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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山:門 2026 여름
CHOICE
초이스┃산조 만드는 작곡가들
작곡동인 원시인 <오늘의 음악Ⅳ-5인의 산조>
성혜인


최근 자신의 이름을 내건 산조를 선보이는 음악가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수십 년간 몸으로 익혀 온 산조에 자신의 해석을 더해 보기 위한 시도일 수 있겠으나, 결국 산조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가장 편안한 형식이라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작곡동인 원시인의 <오늘의 음악Ⅳ-5인의 산조>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산조를 비롯한 한국 전통음악은 오랫동안 ‘연주자’의 음악으로 이해되어 왔다. 과거의 음악가들은 ‘작곡가’이자 ‘연주자’로, 창작과 연주를 분리하지 않는 음악적 실천을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 공연에선 작곡가가 만든 산조를 연주자들이 연주한다. 익숙한 산조의 틀을 공유하지만 창작의 주체와 방식이 달라진 셈이다.

현대의 작곡가가 산조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작곡가가 만든 산조는 연주자가 만든 산조와 무엇이 같고 다를까. 이번 인터뷰에서는 작곡동인 원시인이 각자의 방식으로 산조를 새롭게 바라본 과정을 들어보았다.

 

작곡동인 원시인은 어떤 단체인가요?

작곡동인 원시인은 2020년에 김상욱, 김정근, 유민희, 이경은, 홍수미, 다섯 명의 작곡가가 모여 시작한 창작음악 작곡가 동인입니다. ‘원시인’이라는 이름에서 ‘원’은 멀리 내다본다는 뜻의 ‘멀 원(遠)’과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뜻의 ‘근원 원(源)’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전통이라는 근원을 바탕으로 삼으면서도, 동시에 지금 이후의 음악을 멀리 바라보고자 하는 태도가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원시인은 <오늘의 음악> 시리즈를 통해 여러 시도를 해왔습니다

2022년 <오늘의 음악Ⅰ>에서는 아쟁앙상블 Bow+ing과 함께 아쟁 창작곡을 선보였고요. 2023년 <오늘의 음악Ⅱ-with String Quartet>에서는 현악 4중주와 국악기 독주를 통해 한국음악의 가락과 장단을 서양 현악기의 언어와 연결하고자 했습니다. 2024년 <오늘의 음악Ⅲ-작곡동인 원시인×정소희>에서는 대금과 피아노 2중주 편성을 중심으로 전통음악의 여러 요소를 오늘의 창작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오늘의 음악Ⅳ- 5인의 산조>는 그 흐름의 네 번째 작업으로, ‘산조’라는 장르 자체를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한 프로젝트입니다.

 

최근 자신의 이름을 내건 산조를 선보이는 경우가 많아 그러한 시도의 연장선에서 원시인의 공연도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원시인이 그동안 축적해 온 관심사가 어떻게 이번 작업으로 수렴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대결해 보고 싶은 질문이 많았을 텐데 현 시점에서 산조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유가 있나요?

산조는 한국 전통음악을 대표하는 기악 독주 형식입니다. 한 악기의 소리와 연주자의 호흡, 장단의 흐름, 선율의 변화, 개인의 음악적 표현이 집약된 장르이기에 산조를 다룬다는 것은 ‘한국음악의 핵심적인 감각을 오늘의 창작 언어로 어떻게 다시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물론 오랫동안 명인 연주자들의 음악으로 전승되어 온 장르인 만큼, 작곡가가 산조에 도전한다는 일에는 적지 않은 부담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전통 산조에 대한 다양한 레퍼런스가 축적되어 있고, 한국음악 작곡가들도 산조의 어법과 구조를 오랫동안 공부해 왔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작곡가가 만드는 산조는 어떤 모습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산조는 연주자의 음악으로 이해됩니다. 이번 작업은 작곡가와 연주자가 분리된 형태라는 점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오늘날 작곡가가 산조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말씀하신 것처럼 전통 산조에서 연주자는 창작자이자 해석자이고, 동시에 전승자였습니다. 이번 작업은 그런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작곡가가 산조의 구조와 호흡을 어떻게 다시 설계할 수 있는지를 묻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작곡가가 산조를 다룬다는 것은 연주자의 산조를 대신하는 일이 아닙니다. 산조가 지닌 장단의 흐름, 선율의 변화, 악기 고유의 성음, 긴 시간 안에서 만들어지는 서사와 몰입을 오늘의 작곡 언어로 다시 조직해 보는 일입니다. 이때 작곡가의 역할은 산조를 악보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의 직관적인 에너지가 발현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곡가의 구조적 사고와 연주자의 몸이 만날 때, 기존 산조와는 또 다른 창작 방식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통 산조든 창작 산조든 ‘산조’라고 부르는 것을 좀 더 선호합니다. 전통 산조와 창작 산조의 경계는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전통 산조와 창작 산조의 경계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전승의 시간과 명인들의 음악어법, 연주자의 몸에 축적된 감각은 쉽게 대체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가 곧 위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창작 산조 역시 오늘의 작곡가와 연주자가 산조를 다시 통과하며 만들어 내는 또 하나의 실천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산조는 고정된 과거의 양식이 아니라 시대를 지나며 계속 변화하고 확장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창작 산조들 역시 그 역사 위에 또 다른 층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산조를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전통 산조의 문법에 지나치게 갇히면 이미 존재하는 훌륭한 산조들의 그림자 안에 머물 수 있고, 반대로 새로움만을 앞세우면 산조가 가진 장단의 호흡과 긴 시간의 흐름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창작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산조의 형식과 정신을 존중하면서도, 기존 산조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균형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말씀하신 부분을 돌파하는 작곡가의 방식도 조금씩 다를 것 같습니다.

우선 ‘​거문고 산조’​의 경우 오경자 선생님의 연주력을 염두에 두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강인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음색, 섬세하게 살아 있는 시김새의 표현, 반주 없이도 장단의 흐름과 무게감을 전달하는 힘을 바탕으로, 오경자 연주자이기에 가능한 음악을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아쟁 산조’​의 경우에는 악기의 조율과 실제 구현 가능한 선법을 먼저 살피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백인영류 아쟁 산조 등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전조를 통한 선법의 확장과 피치카토, 중음주법 등 창작 아쟁곡에서 자주 활용되는 주법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피리 산조’​의 경우 기존 피리 산조와 여러 유파의 선법, 리듬, 표현법을 분석하는 데서 작업을 출발했습니다. 특히 박범훈류 피리 산조와 이충선류 피리 산조는 피리 산조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데 중요한 음악적 영감을 주었습니다. 남도제 육자배기토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수심가토리와 메나리토리 등 서로 다른 지역의 선법을 작품 안에 활용하고자 했으며, 작곡가의 구조와 세부적인 의도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오선보를 사용해 음정과 표현 지시를 비교적 정교하게 기보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결국 이번 작업에서는 작곡가의 설계와 연주자의 실제 감각이 만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작곡가는 작품 전체의 구조와 흐름을 의식적으로 설계하지만, 실제 소리의 설득력은 결국 연주자의 몸과 호흡을 통해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산조에 대한 탐구, 연주자와의 긴밀한 협업이 작업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네요. 작곡가가 만든 산조와 소리의 설득력을 만들어 내는 연주자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일 것 같습니다. 이번 공연의 전체 구성은 어떤가요?

이번 공연은 다섯 명의 작곡가가 각각 하나의 악기를 맡아 긴 산조를 창작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작곡가 이경은의 ‘거문고 산조’, 홍수미의 ‘아쟁 산조’, 김정근의 ‘생황 산조’, 유민희의 ‘대금 산조’, 김상욱의 ‘피리 산조’가 한 무대에서 초연됩니다. 참여 연주자로는 거문고 오경자, 아쟁 이화연, 생황 김태경, 대금 류근화, 피리 이승헌이 함께하며, 고수로는 연제호, 황민왕, 서수복, 배런, 양재춘이 참여합니다.

이번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기존 산조의 형식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각 악기가 가진 조건을 바탕으로 산조의 시간과 호흡을 다시 생각해 보는 일입니다. 거문고, 아쟁, 생황, 대금, 피리는 모두 서로 다른 소리의 질감과 연주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악기는 이미 산조의 역사 안에서 깊은 전통을 지니고 있고, 어떤 악기는 산조라는 이름 안에서 아직 낯선 위치에 있습니다. 작곡동인 원시인은 이러한 차이를 하나의 약점이 아니라, 오늘의 산조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묻는 출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산조라는 공통의 틀 안에서 각 악기와 연주자가 가진 고유한 질문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초연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아카이빙을 하실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번 작업은 공연 한 번으로 끝나는 프로젝트가 아니었으면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여러 방식으로 아카이빙하려는 이유는 단순히 공연을 보존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이번 작품들이 초연 이후에도 다시 연주되고, 연구되고, 또 다른 창작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악보는 작곡가가 산조를 어떻게 구조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가 되고, 음원과 영상은 연주자의 호흡과 장단의 실제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됩니다. 작곡 노트나 창작 과정의 기록은 작품이 어떤 질문에서 출발했고 어떤 고민을 거쳐 완성되었는지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료들이 이후의 연주자, 작곡가, 연구자들에게 하나의 참고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원시인이 이번 공연을 통해 관객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질문은 무엇인가요?

이번 작업은 새로운 산조를 만드는 일이면서 동시에 산조라는 개념을 다시 묻는 일이기도 합니다. 산조는 반드시 기존의 유파와 악기 안에서만 성립하는가, 남도 음악어법 밖의 다양한 선법도 산조의 언어 안에서 작동할 수 있는가, 작곡가가 악보로 쓴 산조 안에서도 연주자의 호흡과 해석은 살아날 수 있는가. 특히 생황처럼 전통 산조가 존재하지 않는 악기에서도 산조를 사유할 수 있는가. 이번 작업은 이런 질문들을 자연스럽게 포함하고 있습니다.

작곡동인 원시인은 이번 공연이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는 자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산조를 과거의 완성된 형식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오늘의 작곡가와 연주자가 다시 통과해야 할 살아 있는 장르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음악Ⅳ-5인의 산조>가 산조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산조가 앞으로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작곡동인 원시인 <오늘의 음악Ⅳ-5인의 산조>

  • ​일시 : 2026년 8월 23일(일) 15:00 / 17:00
  • 장소 : 서울돈화문국악당

 

성혜인
음악비평동인 ‘헤테로포니’ 필진, 비평지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편집위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다. 음악과 공연예술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문화적 실천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강의, 방송, 자문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성혜인
음악비평동인 ‘헤테로포니’ 필진, 비평지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편집위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다. 음악과 공연예술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문화적 실천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강의, 방송, 자문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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