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고요(靜)는 모든 소리가 태어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상태이자, 보이지 않는 파동들이 비로소 존재를 드러내는 심연의 공간이다. 소리가 태어나기 직전의 미세한 떨림, 공기 속에 번져가는 희미한 숨결 그리고 음(音)과 음 사이에 존재하는 감각의 틈. 백유미 작곡 프로젝트 시리즈의 첫 번째 여정인 <정음(靜音): 여백의 흐름>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공연은 단순히 음악을 들려주는 자리가 아니라 소리의 결이 생성되어 사라지기까지의 과정 자체를 하나의 미학으로 제시하는 시도였다.
정음 一. 소리의 첫 숨결
화려한 기교나 음표의 나열보다 중요했던 것은 비워진 시간이었다. 음과 음 사이의 밀도, 잔향이 공간 속으로 스며드는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숨의 리듬이 공연 전체를 지배했다. 이는 단순한 미니멀리즘적 접근이라기보다, 동양의 시간과 정악의 호흡에 현대의 음향과 화성의 결을 더한 작곡가의 시선이었다.
‘Prologue. 공성(空聲)’은 이러한 미학적 방향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객석을 감싸는 푸른 어둠과 정제된 침묵 위로 전자음향이 천천히 스며들며 공간의 밀도를 바꾸기 시작한다. 차갑고 비정형적인 낯선 음향은 악기의 음색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고, 거문고의 단편적 음들은 마치 아직 언어가 되지 못한 원초적 발화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전자음향은 단순히 배경과 장식의 역할에 그치지 않았고, 거문고 역시 전통성을 상징하는 기능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두 요소는 서로의 질감을 침범하고 스며들며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냈다.
정음 二. 정악의 시간이 흐르다
이번 공연에서 특히 주목할 지점은 시간의 흐름으로 음악적 ‘공간’을 다루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공연이 선율과 리듬 중심의 서사로 이루어진다면, <정음(靜音): 여백의 흐름>은 음악이 닿는 공간의 밀도와 흐름을 중심으로 음악적 구조를 형성했다. 소리는 선형의 시간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머물고, 번지고, 희미해지다 다시 나타났다. 그 움직임은 마치 수면 위에 번지는 물결과도 같았고, 관객은 그 안에서 방향을 따라가기보다 감각의 흐름 속에 머무르게 된다.
이는 ‘정악(正樂)’의 시간과도 연결된다. 지나침 없는 절제와 치우침 없는 균형. 움직임 속에 고요함이 있고, 고요함 속에 움직임이 있는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이다. 정악의 호흡은 단순히 빠르기의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 이번 작업은 바로 그 호흡의 철학을 오늘의 언어와 현대적인 공간감으로 확장시켰다.
![[크기변환]_0909[크기변환]_0909A1S04137.jpg](http://sgtt.kr/assets/data/20260617040407_5n4buoe.jpg)
‘Part I. 숨’에서는 이러한 특징이 더욱 분명해진다. 거문고 연주자 김혁수의 술대가 현을 내리치는 순간, 정악의 축이 세워졌다. 엄격하고 절제된 구조는 전통의 재현에 머무르지 않았다. 피아노의 현대적 화성 그리고 인위와 자연이 공존하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와 조우하며 정악 특유의 호흡은 새로운 층위로 확장되었다. 이 과정은 충돌보다는 공존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화성은 전통의 선율을 지워내지 않았고, 거문고 역시 과거의 형식을 고집하지 않았다. 각자의 언어를 유지한 채 서로의 빈 공간을 채워갔다.
정의석의 사운드 디자인 역시 인상적이다. 공연 전반에 배치된 자연의 질감과 입체적 전자 음향은 음악 전체를 단순한 청각적 경험이 아닌 공간적 경험으로 전환시켰다. 잔향의 설계 또한 탁월했다. 소리는 연주가 끝나는 순간 사라지지 않고 공간을 유영하며 그 흐름을 이어갔다. 이 덕분에 음악은 하나의 선형적 구조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순환적 흐름으로 느껴졌다. 서두르지 않은 채 천천히 흐르고, 머물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무대 위에 잔잔한 울림을 남겼다.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위, 동양적 호흡과 현대적 감각이 서로의 경계를 흐리며 조화의 결을 형성했다.
‘Part II. 흐름’에서 피아니스트 이승우의 연주는 공간의 정서를 바꿨다. 거문고의 파편화된 음들이 구조적 여백을 제시했다면, 피아노의 화성적 연주는 음악의 여백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반복되는 아르페지오와 미세하게 변주되는 음형은 호흡의 유연함 속에서 조금씩 형태를 바꾸며 살아 움직였다.
정악의 호흡, 미니멀리즘의 반복성, 앰비언트 사운드(Ambient Sound)의 공간감, 현대음악의 질감적 접근이 공존했다. 장르적 혼합을 위한 결합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음악 언어가 하나의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공유하느냐에 있다. 그래서 이 공연은 크로스오버라는 익숙한 범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전통 음악의 미학적 본질을 현대의 감각 안에서 재구성하려는 탐구에 가깝다.
정음 三. 흐름의 결이 머물다
음악의 절정은 밀도 높은 결의 확장을 통해 이루어졌다. ‘Part III. 울림’에서는 각각의 소리가 더욱 입체적인 층위를 형성했다. 피아노의 화성은 다층적 구조로 확장되고, 거문고의 선율은 그 사이를 유영한다. 반복되는 리듬은 공간 속에서 중첩되며 거대한 흐름을 만들고, 전자음과 자연음의 음향은 그 사이에서 번져가며 소리의 깊이를 확장한다. 이 순간 음악은 서로 다른 소리들이 어떻게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가에 집중했다.
마지막 ‘Epilogue. 수련(睡蓮)’은 공연 전체의 미학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소리들은 시간을 흘러 결을 이루고, 여백에 스며들다 남겨진 잔향은 객석에 머문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음악은 어딘가에서 계속 흐르고 있었다.
![[크기변환]_0909A1S03655.jpg](http://sgtt.kr/assets/data/20260617040430_4eanujn.jpg)
마치며 : 한 폭의 수묵화처럼
<정음(靜音): 여백의 흐름>을 관통하는 핵심은 결국 ‘결’이다.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서로 다른 본질과 호흡이 충돌하지 않고 조화의 결을 이룬다. 이 지점에서 공연은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킨다. 수묵화가 먹의 농담(濃淡)과 번짐, 그리고 보이지 않는 여백을 통해 깊이를 만들어내듯, 이번 무대 역시 소리의 밀도와 여백의 대비를 통해 입체적인 감각을 구축했다. 어떤 순간은 갈필(渴筆)처럼 거칠고, 어떤 순간은 담묵(淡墨)처럼 희미했다.
수묵화에서 한 번의 강렬한 방점(傍點)은 전체의 호흡을 바꾸기도 한다. 순간적인 밀도의 변화 그리고 과감한 대비는 이번 무대의 여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음향과 악기들이 가진 날것의 질감 대비 역시 작품의 공간감을 입체적으로 확장시키며 소리의 결을 이어갔다. 마치 일필휘지의 붓끝처럼 음악은 끊어질 듯 이어지는 하나의 호흡 안에서 흘러갔고, 서로의 결을 존중하며 스며지는 소리의 농담은 작품 전체에 긴 숨결과 깊은 여운을 만들어냈다.
이번 공연은 전통이 현대와 만나는 방식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단순히 내용을 혼합하고 형식을 재구성하는 것만이 아니다. 본질적인 미학과 호흡을 이해한 뒤, 오늘의 감각 안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작업이어야 한다. <정음(靜音): 여백의 흐름>은 바로 그 가능성을 조심스럽지만,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그렇게 정악의 시간은 공간에 스며들었다. 잔향은 남고,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호흡하며 끝내 흐르는 또 하나의 울림이었다.
| 조용경 | |
| 작곡가이자 예술감독.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K-Heritage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가는 문화콘텐츠학 박사다. 한양대학교 실용음악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공연예술과 문화기획의 경계를 넘나들며 국가·지자체 문화예술 프로젝트 및 대형 문화행사의 예술감독·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예술과 사회를 잇는 칼럼니스트로도 활발히 소통 중이다. |
| 조용경 |
| 작곡가이자 예술감독.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K-Heritage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가는 문화콘텐츠학 박사다. 한양대학교 실용음악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공연예술과 문화기획의 경계를 넘나들며 국가·지자체 문화예술 프로젝트 및 대형 문화행사의 예술감독·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예술과 사회를 잇는 칼럼니스트로도 활발히 소통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