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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山:門 2026 봄
REVIEW
리뷰┃찰나의 ‘공(空)’을 건너, 되어가는 ‘화(化)’의 자리
서울교방 6인전 <공화(空花)-허공에 핀 꽃>
최해리


오늘의 몸으로 이어지는 전통춤

춤은 사라지기 위해 존재한다. 막이 내리는 순간, 흔적도 없이 흩어지는 몸의 언어. 그러나 그 사라짐은 곧 다시 피어나는 생성의 자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춤을 시공 속에서 피어나는 찰나의 꽃이라 말한다. 서울남산국악당의 공동기획으로 이어지고 있는 ‘서울교방 6인전’은 이처럼 춤의 존재 방식을 해마다 다른 방식으로 질문하는 무대다.

서울남산국악당의 공동기획 공연은 이미 하나의 ‘품질 보증’처럼 기능한다. 그중에서도 ‘서울교방 6인전’은 단순한 정례 공연에 머물지 않는다. 전통춤의 기량을 선보이는 무대로 출발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주제 의식이 선명해지고, 춤꾼 개개인의 사유가 전면화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특히 2024년 <반월>, 2025년 <독공독무>를 거치며 전문 연출가와 미디어아트 협업으로 서울교방의 동시대적 전통춤 탐색 시도는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2026년 <공화-허공에 핀 꽃>에 이르러 그 흐름은 ‘춤꾼의 존재론’으로까지 한층 깊어진다.

서울교방의 위상 또한 이 무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전제다. 예술감독 김경란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 단체는 국가 및 시·도 지정 무형유산의 보존 체계와는 다른 궤적을 그린다. 정형화된 원형 보존이 아니라, 소멸 위기에 놓였던 교방과 권번의 전통춤을 오늘의 몸으로 되살려내는 ‘창조적 계승’을 지향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전통을 고정된 형식이 아닌 해석의 시간 속에서 재탄생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태도이며, 이번 무대 역시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서울교방 6인전’은 약 70여 명의 동인 중 선발된 중견 이상의 춤꾼 6인이 무대에 오르는 일종의 ‘이습회’적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학습발표회가 아니다. 김경란의 손을 거쳐 정련된 서울교방의 대표 레퍼토리(조갑녀와 장금도의 민살풀이, 구음검무, 승무, 교방굿거리춤, 논개별곡)를 바탕으로, 각자의 몸과 시간, 그리고 사유를 덧입혀 다시 구성하는 과정이다. 올해의 주제 ‘공화(空花)’는 공(空)을 마음, 화(花)를 몸으로 설정하고, 그 상호작용을 곧 춤과 춤꾼 그 자체로 환원하는 개념이다. 결국 이 무대는 “무엇을 추는가”보다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묻는 자리라 할 수 있다.

 

피고 또 피어나는

무대의 시작을 연 이미영 교수의 사회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과도한 설명이나 계몽적 해설에 기대지 않고, 절제된 언어와 깊이 있는 음성으로 공연의 핵심을 짚어주며 막과 막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브리지 역할을 능숙하게 수행했다. 이러한 ‘말의 방식’은 공연 전체의 밀도를 한층 끌어올리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했다.

첫 무대 ‘심화(深花)’를 맡은 유영란은 가장 어려운 자리에서 가장 고된 질문과 마주한다. 김경란의 배치가 늘 그러하듯, 첫 순서는 가장 연배가 어린 춤꾼에게 주어지고, 그것도 맨손으로 추는 민살풀이가 놓인다. 이는 단순한 순서가 아니라 일종의 시험대다. 유영란은 감정을 과시하기보다 담담하게 자신을 밀어붙인다. 가녀린 몸이지만 동편제 특유의 강건함으로 조갑녀제 민살풀이를 풀어내며, 산처럼 무거운 움직임을 형성해낸다. 그 ‘심화’는 단순한 기량을 넘어, 시련 속에서 단련된 내면의 밀도로 읽힌다.

정승혜의 ‘가화(歌花)’는 구음검무를 통해 고독한 집중의 미학을 드러낸다. 김보라의 신비로운 구음과 단박한 장구 장단 위에서 1인의 검무가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느긋한 교태미는 기존 서울교방 검무와는 다른 결을 형성한다. 특히 한 손에 두 칼을 어긋나게 쥐는 변형된 춤사위는 전통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미묘한 변주로 눈길을 끈다.

정희선의 ‘원화(願花)’는 이번 무대에서 가장 또렷한 성취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국가무형유산으로서의 승무가 지닌 중량감은 재창조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지만, 김경란의 안무는 이를 사찰 의례의 감각으로 재구성한다. 이번 무대에서는 초장에 더해진 황민왕의 염불이 승무를 일종의 ‘염원의 미학’으로 확장시킨다. 정희선은 검정 장삼의 장쾌한 뿌림과 법고의 숭고한 타법을 결합하여, 승무를 단순한 춤을 넘어 수행적 장면으로 전환해냈다.

성윤선의 ‘화화(和花)’는 교방굿거리춤의 이중적 매력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전반부 굿거리에서는 섬세한 발디딤과 리듬 감각으로 권번 특유의 정서를 단정하게 구축하고, 이어지는 소고춤에서는 설장고 연주자로서의 개성과 즉흥성이 폭발하며 민속적 신명을 환기한다. 이 대비는 단순한 구성의 문제가 아니라, 한 춤꾼 안에 공존하는 다층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장인숙의 ‘유화(流花)’는 장금도제 민살풀이의 난해한 미학을 정면으로 다룬다. 잘게 쪼개진 호흡과 박자, 그 사이에 스며드는 처연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구현해야 하는 이 춤에서 그녀는 스승 김경란의 춤집을 거의 완벽하게 체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모사를 넘어 전승과 동일시의 경계에서 이루어진 깊은 내면화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마지막 무대 ‘적화(赤花)’에서 김부경은 논개별곡을 통해 자신의 춤 생애를 서사화한다. 무대 위에 떨어진 수건, 그리고 그 위를 무심히 지나가는 몸짓은 단순한 연출을 넘어 경계를 건너는 행위처럼 읽힌다. 다시는 추지 못할 춤이라 말하면서도, 그 순간 오히려 새로운 춤꾼으로 거듭나는 역설. 완숙한 경지란 결국 기술의 완성이 아니라 존재의 전환에 가까움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되어가는 과정의 은유

이 무대에서 인상적인 것은 여섯 명이 함께 선다는 사실 자체가 만들어내는 긴장이다. 동료이자 동인이지만, 동시에 서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관계. 동일한 레퍼토리를 반복하면서도 각자의 깊이를 만들어야 하는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다. 김경란이 일구어 놓은 춤의 텃밭 위에서 각자의 꽃을 피워내야 하는 압박은 무대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러나 바로 그 긴장이 ‘공(空)’을 넘어 ‘화(化)’로 나아가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공화’는 허공에 피어나는 꽃이 아니라 사라짐을 통과하며 비로소 ‘되어가는’ 존재의 과정에 대한 은유다. 찰나의 공 뒤에 남는 것은 허망함이 아니라 각자의 춤 세계가 더욱 명징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서울교방의 작업은 이제 전통춤 재창조의 하나의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경계해야 할 지점도 분명하다. 과도한 재해석, 춤의 감성을 압도하는 미디어아트, 반주단의 에너지가 춤의 호흡을 넘어서는 순간, 그것은 동시대성이 아니라 감각의 과잉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동시대성은 기술이나 형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관객과 얼마나 깊이 호흡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다음 무대에서 서울교방이 보여줄 것은 무엇일까. 더 많은 장치가 아니라 더 깊어진 호흡, 더 화려한 이미지가 아니라 더 정제된 존재의 밀도일 것이다. 그렇게 다시, 사라지기 위해 피어나는 춤을 기다린다.

 

최해리
무용평론가이자 무용인류학자. 하와이대학교에서 민족무용학을 전공한 이래 춤 현장의 아카이브 구축, 공연 기획, 정책 연구를 병행해 왔다. 현재 (사)한국춤문화자료원 이사장과 무용 전문 매체 댄스포스트코리아의 발행인을 맡아 한국 춤문화의 역사적 맥락을 짚고 기록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최해리
무용평론가이자 무용인류학자. 하와이대학교에서 민족무용학을 전공한 이래 춤 현장의 아카이브 구축, 공연 기획, 정책 연구를 병행해 왔다. 현재 (사)한국춤문화자료원 이사장과 무용 전문 매체 댄스포스트코리아의 발행인을 맡아 한국 춤문화의 역사적 맥락을 짚고 기록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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